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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안젤라의 노래 6


<지난 2월호에 이어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한 무리의 학생들 사이로 기타를 메고 바삐 달리는 한 청년을 바라보면 그 끝으로 멀리 여 학생 하나가 까만 생머리를 날리며 화사한 모습으로 실루엣 되어 걸어오고. 오버랩 되면,

1991년 봄 4월 26일,

“등록금 인상 반대!! 부패 권력 타도!”

“전두환 노태우가 대를 이어 착복한 천문학적인 국민의 돈을 찾아 내서 교육비로 전용하자”

이렇게 외치던 강경대가 전투 경찰 백골단의 쇠 파이프에 맞아 죽자, 학생들은 연일 스크럼을 짜고 독재 타도 민주화를 외치며 정권 규탄 시위를 하고 있었지만, 잘 나가는 재력가 집안의 딸인 강혜린은 한국대 국문과 3학년 학생으로서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1991년 5월 어느 날. 그 날도 까만 생머리를 날리며 깔끔하고 세련된 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가방을 메고 친구 지영이와 수다를 떨며 정문을 향하여 걸어 나오다가 교문 밖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투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 속에 섞여 주먹을 흔들며 ‘님을 위한 행진곡’ 을 부르며

“살인정권 물러가라! 강경대를 살려내라!”

구호를 외치고 있는 같은 과 친구 희경이 혜린을 발견하자 달려 나와 혜린의 손을 잡고 시위 인파 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이다.

전대협 의장인 한국대 학생회장 한동만이 주도 하는 살인 정권 타도 규탄 대회장.

“대한민국 헌법 21조가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

선언문 낭독을 끝으로 출정식 식순에 따라 강경대 영혼을 부르는 한국대 무용과 이 애주 교수의 살풀이 춤이 ‘꿈꾸는 세상’ 기타 연주에 맞춰 처연하게 춤사위가 이어 지는 그때... 몸에 불을 붙인 채 바닥으로 쿵-떨어지는 분신 청년.

“해산하라!! 해산하라!”

반복되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와 함께 갑자기 경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되고 최루탄 연기를 피해 산발적으로 이리 저리 흩어지는 시위 학생들. 혜린도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우왕좌왕 달리는데 경찰들이 펑-펑- 쏘아댄 최루탄과 페퍼폭 파편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는 한국대 록 그룹 ‘피닉스’ 리더 겸 기타리스트를 나성민(27/남)을 발견한다.

조금 전, 행사장에서 장발의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까만 스카프를 이마에 돌려 매고 까만 잠자리 썬그라스를 쓰고 낡은 기타를 들고 자신이 작곡한 ‘꿈꾸는 세상’을 연주하던 남자가 아닌가? 달려가 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머리를 동여매 지혈을 시키고 바닥에 뒹구는 기타를 챙기고 손을 잡고 같이 달리기 시작한다.

급한 대로 눈에 보이는 학교 안 담장을 힘겹게 넘어 길 건너 기찻길을 따라 달리 다가 비탈길로 내려가면 신촌 재래시장이 나타나고 좁은 상가 골목길 좌판대 사이를 헤집고 죽어라 달리는 두 사람. 뒤 이어 와르르 쏟아지는 과일과 잡화들. 곤봉을 들고 뒤 쫓아 오는 사복 전투 경찰. 헉헉대며 달리다 보면 막다른 골목.

“하이고 요 쥐새끼 같은 것들!”

쇠 파이프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사복 전경. 성민과 혜린 파랗게 질려 뒷걸음질 친다. 이때 혜린의 눈에 들어오는 성민의 기타. 동시에 성민의 어깨를 가격하는 전경. 아악- 외마디 소릴 내며 손을 놓는 성민의 기타를 잡아서 전광석화처럼 전경의 머리를 내려치는 혜린.

정신을 잃고 널브러지는 전경. 보면, 혜린의 손엔 기타 통은 없고 플렛트만 들려 있다. 플렛트를 툭- 떨어뜨리는 혜린. 파르르 떨리는 혜린의 손을 잡는 성민. 성민이 이끄는 대로 넋이 나간 듯 휘청거리며 발길을 옮기는 혜린...

인사동 낙원상가 근처 엄마식당. 찌그러진 양재기에 막걸리를 넘치게 따르는 혜린. 식탁 위에 두부와 김치 몇 조각 놓고 앉아서 벌써 많이 취한 듯 두 볼이 벌겋게 달아 올라 딸꾹질을 해 대며 혀 꼬인 소리로 횡성 수설 하는 혜린.

“딸꾹! 나한테 기타 맞은 그 백골단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불안감을 감추려는 듯 젓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노래하는 혜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이런 혜린을 지켜보던 성민이 많이 취했다며 혜린의 술잔을 뺏으려 하자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술 더 달라고 혜린이 고래 고래 소릴 지르자,

“머리 깨지고 기타 부셔 먹고 술주정 받고 이게 뭐야?”

성민이 버럭 소릴 지르며 일어나 그대로 나가 버린다. 나가는 성민을 향해


“야! 혼자 가면 난 어떡해?” 하며 따라 나간다. 뒤 이어 식당 아줌마의 소리.

“아가씨 술값!” 하며 혜린의 가방을 들고 뒤 쫓는다.

인사동 밤거리. 목에 가방을 건 혜린이 성민의 팔을 잡고 악을 쓰고 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이때, 두 명의 사내가 다가와 경례를 한다. 후레쉬를 혜린의 옷에 달린 학교 배지에 대며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학생이지? 가방 좀 볼까?” 하자 혜린이,

“당신이 뭔데 남의 가방을 보자는 거야?” 그러자 다른 사내가 “경찰입니다”라고 말 하자 혜린이 더 큰 소리로,

“당신이 경찰인지 뉘집 똥개 새낀지 내가 어떻게 알아? 딸꾹!”

그러자 화가 난 또 다른 사내가 혜린에게,

“자꾸 이러면 공무 집행 방해죄로 유치장에 쳐 넣을 거야” 하자 혜린이 “갈 데도 없는데.. 유치장 좋지! 딸꾹- 갈 때는 가더라도 당신 소속부터 알고 가야겠어! 소속이 어디야? 종로서야? 본청이야? 말해! 당장!”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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